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오시프 스탈린/생애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까지 == 당시 소련의 실태는 [[동물농장(소설)|동물농장]]에서 비판되기도 했다. 스탈린의 의심과 불안이 소련 사회의 구석구석을 지배하였고, 결국 스탈린은 [[대숙청]]이라는 사상 최대의 [[마녀사냥]]을 발생시킨다.[* 이에 대해 스탈린의 딸은 "아버지는 어디에서든 적을 찾아내려 했으며 고독감과 절망감으로 가득한 탄압 매니아였다."라고 술회했다.] 실제로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스탈린 집권기를 공식적으로 '''대공포(大恐怖, Great Terror)'''기로 정의하고 있을 정도이며, 동물농장과 [[1984(소설)|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음에도 스탈린과 소련식 정책을 증오하며 그들을 신랄하게 까는 저 두 책을 썼다. 이에 관해선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 내의 [[통합 마르크스주의 노동자당]](POUM)들을 박멸시키기 위하여 [[NKVD]]로 하여금 스탈린주의자(PCE)를 부추겨 공화파를 후원하기는 커녕 분열을 조장했다는 이유도 있는데, 당시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 중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스탈린은 [[나치 독일]]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고, 개전 이후 독일과 함께 [[폴란드 제2공화국|폴란드]]를 [[폴란드 침공|사이좋게]] [[독소 폴란드 점령|갈라먹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았던 조약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일이었다. 스탈린도 언젠가 독일이 뒤통수를 후려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때문에 1939년의 폴란드 분할 이후 새로운 독일-소련 국경선에 '''"스탈린 라인"'''이라는 방어선을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이전의 소련-폴란드 국경선에 있었던 방어선을 뜯어다가 새 방어선을 만들려고 한 게 문제였다. 나중에 스탈린이 죽고 난 후 [[니키타 흐루쇼프]]의 발언 중에는 "우리는 스탈린 덕분에 이긴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긴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다만 흐루쇼프의 평가는 전쟁 지휘에 대한 부분에 한정해서 본다면 맞을지 몰라도 스탈린의 공업화 정책이 아니었다면 소련이 독소전에서 이기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라고 봐야 한다. 이 무렵 스탈린은 [[코민테른]]을 통해 중국 혁명에 깊숙히 개입했으며, [[중국 공산당]]에게 오랫동안 [[중국 국민당]]과의 [[1차 국공합작|국공합작]]을 유지하라고 교시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장제스]]를 비롯한 국민당 우파들을 숙청하고 국민당을 공산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4.12 상하이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틀어졌다. 이후 갑작스럽게 중국 공산당의 무력 봉기를 지시하면서 노선을 거꾸로 뒤집었으나, 그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취추바이|취추바이 노선]]은 처참하게 실패했고 이후 [[리리싼 노선]]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스탈린은 중국인 공산주의자들이 좌경모험주의를 범한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겨 그들을 숙청했다. 1929년에는 [[중동로 사건]], [[봉소전쟁]]을 통해 [[장쉐량]]과도 부딪혔으나 정작 승리를 거둔 [[바실리 블류헤르]]를 대숙청 중인 1938년에 가차없이 숙청해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